네즈 미술관은 사설 미술관으로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게다가 현대 일본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에도 시대 화가 오가타 코린의 붓꽃(제비붓꽃) 병풍을 비롯해, 나치노타키 등의 국보와 일본과 동양의 여러 분야 - 회화, 조각, 공예, 서예 - 에 걸친 중요문화재를 소장하고 있고, 정원에는 다실도 있어 동양 미술 애호가들은 물론 다도를 즐기를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국보인 미술품들은 특정 전시 기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일년 내내 특별전과 기획전을 실시하고 있다.
마침 왕조 문학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다' 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시작되어, 오모테산도 거리를 다시 한 번 찾았다.
네즈 미술관은 입구부터가 동양의 정서를 듬뿍 풍겼다. 수묵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꼿꼿한 대나무 숲과 일본 정원의 한 요소인 자갈돌이 발길을 동양 미술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건물 입구로 들어서자 왼쪽으로는 전시실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롯본기 모리 타워가 멀리 보이는 정원이 오전 햇살에 반짝거렸다.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는 익숙한 중세의 궁중 문학 '겐지 이야기', '이세 이야기' 복수극을 다룬 '소가 형제 이야기', 군사물인 '헤이케 이야기'등, 말로 구술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해 병풍이나 두루말이로 만든 작품들이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극적인 장면을 포착한 감각하며 섬세하고 세세한 표현, 그리고 아직도 선명한 색감, 금박을 입힌 화려함에 그만 그림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정원으로 나와 한숨 돌리며, 아침 일찍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오솔길을 이리저리 걸었다. 나뭇잎 사이로 언뜻 언뜻 다실이 보이고, 잔잔한 연못에 떠 있는 작은 배하며, 그림 속의 세계를 지상에 조그맣게 구현해 놓은 것처럼 아담하고 한가로운 정원이었다.
모리 타워가 보이는 도심인데, 숲 속에서는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려 거니는 발걸음이 점차 여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