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도쿄는 참 피곤한 도시가 아닌가 싶다. 지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길은 쉬지 않고 어딘가를 향하고 있고, 지하를 움직이는 사람들 역시,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아침 러시 아워 시간의 사람들의 물결은, 마치 어딘가에 대형 사건이라도 터져 모두가 그곳으로 달려가는 인상이다. 그런 걸음들 속에서 한가롭게 거리를 거닐고자 한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간혹 한 숨 돌리며 쉬어갈 공간도 필요하다. 딱히 이렇다 할 목적도 없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는 여행객이라면, 어딘가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시부야 일대를 어슬렁거리다 한 숨 쉬어가자 싶으면 보통은 요요기 공원을 떠올린다. 하지만 조금 더 조용하고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시부야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코마바 공원도 참 좋다.
시부야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소음이 딱 끊기는 느낌이 든다. 아래로는 축축하게 이끼 낀 아름드리 둥치, 위로는 하늘을 가린 무성한 잎사귀들.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밀림 같다. 그런 곳을 한가롭게 걷다 보면 구 마에다 저택의 서양관과 마주친다. 둥그런 잔디밭을 앞에 거느리고, 동유럽 어느 귀족의 유서 깊은 성처럼 고고하고 기품있게 서 있는 적갈색 건물. 영국식 건물이라는데 분위기는 동유럽이다.
잔디밭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이번에는 마에다 저택의 일본관이 나온다. 일본식 목조 건물의 전형적인 차분함과 그윽함을 감상하면서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 나오는데, 이 건물이 일본 근대 문학관이다. 갑자기 현대로 타임 슬립한 기분이 들 정도밋밋하지만, 일본의 근대 문학 발전을 위해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카미 쥰 등이 의기투합해서 설립한 문학의 보고 같은 곳이다.
근대문학관 안에는 '분단' 북 카페가 있다. 한쪽 벽면이 온통 책으로 꽉 차 있다. 발코니 석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고 한낮의 햇살 아래에서, 팔걸이에 턱을 괴고 잠시 꾸벅꾸벅 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