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기린비어비렛지 스프링쿨러

외국인들의 족적12 윌리엄 코플랜드

Tomoko Kamishima    입력

린비아비렛지(기린맥주의 요코하마공장)안의 펍레스토랑, 스프링발레에는, 맥주공장에서 생산되어진 갓나온 맥주의 맛을 볼 수 있다. 여기는 일본에서 처음 공업생산이 행해진 요코하마의 맥주제조소, 스프링발레 브루워리를 전신으로한 기린비버리지의 긴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레스토랑이다.

스프링발레

스프링발레는 기린비버리지의 문을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4종류의 오리지날 맥주와 이치방시보리, 라거 등의 간판맥주, 글라스는 500엔부터, 피쳐는 2200-2300엔에 맛볼수있다. 안주는 잘팔리는 포테토샐러드와 소세지, 스페어리브, 피자, 스모크등의 세트메뉴등, 맥주와 궁함이 맞는 안주를 준비해두고 있다.

나는 이날, 프로즌맥주를 마셔봤다. 프로즌 맥주는 2012년 여름 기린이 개발한 신기술,,「(공기를 말려들어가게 하면서 동결과 녹임을 반복해서 샤베트 형태로 거품을 만듬)」를 이용한 신감각의 맥주다. 얼음을 넣은 맥주같이 엷지는 않지만 꽉 잡아주는 차가움이 30분정도 계속된다. 잘 얼은 거품이 놓여서 있어서 바로 없어지지 않는다.

안주는 독일 포테토와 치즈 스모크, 소세지 세트를 주문했다. 바삭바삭한 베이컨이 놓인 독일 포테도는 산미가 너무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맛에 계속 손이 갔다. 베이컨을 얇게해서 포테토와 같이 먹으면 더욱 맛있었다. 치즈 스모크는 가볍게 먹기 좋도록 알맞은 정도로, 스모크를 못먹는 사람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소세지는 4종류를 한 번에 즐길수 있도록 담백한 맛의 2종류와,매운 맛, 그리고 비엔나 1종류가 담겨나왔다. 마스타드는 조금은 단 맛으로 뭔가 허전하다라고 느끼시는 분도 있을 지 모르겠다. 함께 곁들여 나온건 단 맛의 사우어크라우트(소금에 절인 양배추)였다.

맥주양조설비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큰 탱크다. 가게 이름인 스프링발레는 기린그룹의 원래 맥주 양조장에서 유래된다. 옛날 맥주 양조에 쓰여진 탱크의 복제품이나 여러가지 기구류, 맥아를 섞는 도구와 온도계 등이 전시되어져 있다. 맥주양조에 흥미가 있으면 공장견학에 참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어도 좋다. 접수는 입구정면의 건물 1층에 있고 소수라면 예약이 필요없다. 견학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30분 정도로 하루 14번 행해지고있다.(견학투어 70분+ 시음 20분)

기린맥주의 역사

기린 그룹의 전신, 재팬 브루워리는 1885(메이지 18)년 7월에 요코하마 야마테에 있던 스프링발레 브루워리의 장소에 건설되었다. 당시, 맥주제조에는 무엇보다도 우선, 맥주양조에 적합한 물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스프링발레 브루워리에 있던 장소는 양수 확보가 가능하고 막 개통한 철도역에 가깝워 운송에도 적합했다. 이 양수를 발견한 것은 노르웨이계 미국인 윌리엄 코플랜드였다.

윌리엄 포틀랜드

코플랜드는 1834년 노르웨이 남북부의 항구도시, 아렌달에서 태어나 요한 발치누스 토레센이란 이름이 붙어졌다, 고향에서 독일인 양조가에서 맥주양조법을 배우고 5년 수행 후, 미국으로 넘어갔다. 곧 시민권을 얻고 윌리엄 코플랜드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1864년에 개항지 요코하마에 건너온 코플랜드는 공동출자로 목장을 경영하고 운송업을 경영해 자금을 축적하고 1870년, 야마테 123번지에 양질을 연수를 확보하고 스프링발레 브루워리를 설립했다. 같은 시기에 창업해있던 제제크레의 재팬브루워리와 놀트훅 헤프터의 양조장은 냉각장치 등 기술적인 문제를 일으켜 실패해 코플러의 스프링발레만이 남았다.

코플랜드의 공법

이 시대의 맥주양조에는 숙성을 위해 온도를 일정유지하는 여러가지 공법이 필요로 했다. 우선 코플랜드는 시내 언덕에 210m의 가로로 굴을 파고, 굴안에는 맥주의 설비를 수용했다. 여름에도 저온유지가 가능한 가로동굴로 맥주를 숙성시킨 것이다. 또 확보한 복수의 수원은 맥주양조용수로서 쓰고 또 맥아분쇄기용 물레방아를 돌려 동력으로서 활용했다. 그리고 1876년에는 파스츨이 저온살균법 논문을 발표하고, 다음해에는 병맥주를 60도에서 살균하는 파스퇴리제이션을 이용했다.

스프링발레 브루워리의

1872년. 코플랜드는 노르웨이에 돌아가 당시 15세인 안네 크리스티네 올센과 결혼했다. 안네를 데리고 일본에 돌아온 코플랜드는 맥주양조업에 점점 힘을 더했다. 하지만 7년 후, 안네는 병사해버리고 말았다. 그 때에는 판매경쟁에 의한 이익감소와 공동경영자 비간트가 일으킨 재판에 의한 출비 등, 스프링발레 블루워리의 경영은 막다른 곳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1884년, 드디어 코플랜드는 양조장공매라는 사태에 이르러, 스프링발레 브루워리를 손에 놓고 말았다. 그 후 그 토지를 넣고 새로운 맥주공장을 만든 것은 나가사키의 그라바 원으로 이름이 알려진 T.B. 그라바였다.

1885년에는 스프링발레 브루워리 자리에 탄생한 (신) 재팬 브루워리는 T.B.그라바의 수완의 의해 기린맥주를 발표, 일본전국 그리고 세계 중에 그 판로를 넓혀갔다. 기린맥주 요코하마 공장은 그 후 야마테부터 쇼가로 이전했지만 목욕 후 푸슛하고 여는 기린 이찌방 시보리의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맥주의 역사로부터 멀어진 후의 코플랜드의 인생은 다음 번에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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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hyun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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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의 Tomoko Kami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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