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이의 금붕어 제등

일본의 전통 민예에 도전해 보자

4월의 어느 따듯한 아침, 이와쿠니역에서 전철을 타고, 약간의 여행을 했다."전차는 해안가를 달려, 한쪽은 섬들이 떠 있는 빛나는 바다, 다른 한쪽은 선명한 녹색의 전원 풍경을 차창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또 철길가에 있던 몇 개의 낡은 농민 가옥을 지나 나는 야나이로 향했다. 야나이, 그곳은 야마구치현을 여행하는 동안 문득 생각나서 당일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야나이는 아주 작은 시로, 인구는 34,000명이 조금 넘는 인구이다. 야나이는 매우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내가 하차역에서 길로 나올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학동이나, 햇살을 느끼며 산책하는 노부부 정도의 사람밖에 볼 수 없었다. 모처럼 날씨가 좋아서, 시내를 흐르고 있는 얕은 강을 따라서 천천히 걸어 가면, "흰벽의 거리"에 도달했다.

에도시대에는 많은 상인에게 있어서 고향이었던 "흰벽의 거리"는, 돌담대로를 따라서, 현지의 수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가 줄서 있는 매력적인 지구가 되어 있다.이름에서도 알 수 있도록 늘어선 건물 벽에는 회반죽이 칠해져 있고 대부분은 창문이 붙어 있다. 그림에 그린 것처럼 아름다운 구역에는 예를 들어 옛부터 있었던 간장 공장이나 잘 보존된 상인 가옥 등과 같은 볼거리가 많이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금붕어를 보는 것이었다.

네, 금붕어. 시 전체, 특히 흰벽의 거리들이 금붕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진짜 금붕어가 아닌 섬세한 종이로 만든 등롱 금붕어로, 집과 식당, 그리고 식당 밖에 장식되어 있다. 금붕어 등롱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약 150년전, 야나이의 상인들이 아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종이 금붕어를 만들려고 생각했다, 라고 하는 스토리가 있다. 상인들은 붉게 물들인 얇은 종이를 대나무 뼈대 위에 살살 펴서 커다란 둥그스름한 눈과 팔랑팔랑거리는 지느러미를 붙였다. 그것이 오늘의 훌륭한 등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금붕어 등롱에 인기가 있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현재는 일본의 전통 민예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8월 13일에는 2,000개 이상의 금붕어 등롱이 거리를 비추며 도시를 살린다. 그 모습은, 아오모리현의 유명한 축제에 비유해, "금붕어 네부타"라고 불리는 것 조차 있다. (진짜) 금붕어 낚는 대회에 참가하거나 흰 벽의 거리에 퍼지는 노점을 돌거나 금붕어 등롱 춤을 추며, 많은 사람들이 야나이에 모인다. 그리고 축제는 큰 송이의 불꽃놀이로 최고조에 달한다.

하지만 내가 갔던 4월에는 하얀 벽촌이 아주 조용했다.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며 산들산들 바람에 살며시 흔들리는 수많은 금붕어 등롱을 바라보며 나는 먼 옛날로 돌아간 듯 했다. 어떤 가게 앞에 멈추어, 그 가게의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 (이미 아시다시피) 나는 천장에 달려있는 크고 작은 금붕어 등롱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 그 중에는, 아직 눈이 붙여지지 않았거나, 지느러미가 붙어 있지 않았거나, 완성되지 않은 등롱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80대 중반의 일본 여자가 가게 뒤에서 나와 인사를 했다. 그녀는 마사에 씨라고, 가게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미완성인 금붕어 등롱을 가리키며 혹시라도 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했다. 나는 내 금붕어를 집에 들고 가고 싶었기에 중간정도의 등롱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는 낮은 테이블 옆에 정좌하고 마사에씨는 등롱 만드는 법을 차차 설명 해주었다. 이미 몸 상태는 되어 있었으므로, 내가 할 것은 완성전의 약간의 손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할 수 있을까? 막상 해보니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았다. 종이는 쉽게 찢어지기에 뼈대에 붙일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또한 꼬리와 지느러미에 선을 그는데 가는 붓을 사용했지만, 예쁘게 선을 그리려고 내가 고전하고 있는 것을 마사에 씨는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마사에씨는 익숙한 솜씨로 나를 도와주었다"

나의 금붕어가 마르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마사에씨는 과자와 자신의 정원에서 따낸 벚꽃으로 만든 벚꽃차를 가져다 주었다. 가게 안에는, 액자에 있는 마사에씨의 죽은 남편의 사진이 몇개인가 장식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둘이서 함께 금붕어 등롱을 만들었다고 한다, 몇년전에 남편이 죽은 후로는, 그녀가 혼자서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앨범을 보여 주면서 그녀의 가족사진과 아름다운 정원이 담긴 그녀의 집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답례로 나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가족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나의 일본어는 기초 레벨, 마사에씨는 영어를 하지못했지만, 몸짓 손짓으로 함께 말을 찾으면서, 가끔씩은 농담도 섞어서 이야기했고, 우리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돌아오는 길에, 내 금붕어를 여러 겹의 기포지에 싸서, 살짝 상자에 넣어주었다. 또 마사에씨는 작별 선물에 벚꽃차가 들어있는 작은 용기을 주었다.

아주 정중하게 포장해 준 덕분에 나의 금붕어는 몇천 마일 떨어져 있는 내 집까지 멀고 흔들리는 길을 깨지지 않고 이겨냈다. 이 등롱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맑은 날과 벚꽃차를, 그리고 일본여행에서 수없이 많이 느꼈던, 마사에씨와 다른 사람들의 친절과 대접을 떠올리며 웃고 있다. 마사에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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